인생의 흑역사들

 어릴 때 고민도 많았고, 걱정도 많았고, 세상은 나의 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흑역사는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중학생이었음에도 새치가 정말 많았습니다.

머리의 왼쪽 면부터 시작해서 머리 뒤쪽 그리고 오른쪽 옆면까지 거의 빼곡하게 새치가 도배되다시피했습니다. 불행하다 생각하니 더 불행했던 것 같이 많은 양의 새치는 저의 어릴 적 고민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어릴 때는 외형적 면에 민감했는데 새치도 많았는데 여드름도 너무 심하게 많이 나서 얼굴은 빈틈이 없이 여드름이 있었고, 정말 머리끝에서 발까지 여드름이 안 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때 새로운 시련이 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처음으로 혼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냥 힘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학비가 저렴하다는 것과 그 때까지 컴퓨터 만지고 하는 것을 좋아해서 구미에 있는 전자공고로 진학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과를 선택할 때 컴퓨터와 좀 더 관련성 있는 과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과 선택을 잘못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2+1체제라는 것이 있어서 2+1체제를 할 경우에는 3학년 시작과 동시에 실습을 나갔었는데 이것 또한 제대로 선택하지 못해서 2+1체제를 선택해서 3학년때는 취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왜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하지 못 했을까란 고민도 하였는데 한 번 선택한 것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상태였습니다.

 취업을 나가서도 현장에서 일을 했는데 과연 전공과 관련이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 조립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맞는 것일까? 라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니 좋은 거야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어차피 회사에 온 건 돈을 벌러 온 것이고, 누구하나 도와주기 어려운 환경에서 선택한 거니깐 열심히 하자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파이팅이 너무 많이 들어갔는지 일하면서 허리를 삐긋해 다쳐서 몇 달을 고생했습니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4시간도 채 못 자고 출근하고 조금 힘든 시기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아픈 건 운동을 해서 완치를 했습니다.

 군대를 갈 시기가 되어 그때 당시에 훈련이 힘든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특전사를 가고 싶었는데 고졸 출신은 못 간다고 하여 지원을 포기하고 차선책으로 해병대를 가고 싶어서 주위 선배들한테 물어보니 들리는 소리가 군대 기간이 육군의 2년보다 2개월 길기 때문에 회사에서 나중에 복직할 때 복직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런 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육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훈련병 기간 중에 특공대에서 차출이 왔습니다. 바로 특공대 지원을 했습니다. 체력 테스트에서도 점수를 잘 받고, 면접에서도 다른 동기들보다 점수를 잘 받아서 당연히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논산으로 자대배치를 받아서 갔습니다.

 최종적으로 행정병으로 복무를 했는데 이 때 당시에 이라크 파병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라크에 가고 싶어서 지원하였는데 그 때 당시에 논산훈련소 소장님이 반대를 하는 바람에 차출이 거부되었습니다. 뭐 저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기에 인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중대 행정병으로 복무를 하면서 아무래도 보급병과 행정병 2명으로 구성되다 보니 다른 기간병들에 비해 소외감도 느껴지고 앉아서 업무를 보는 것보다 나가서 훈련받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보직변경을 할 수 있는지 상담을 했었는데 예전의 경우를 들어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행정병이 조교로 보직변경을 했었는데 업무가 너무 힘들어서 탈영을 한 이후로 그 뒤로는 보직변경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뭐 그렇게 군생활을 전역할 때까지 부사수없이 일하다가 전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회사 복직신청을 할 당시에 한창 OLED 사업부가 신설되어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직할 때 OLED 사업부로 가고 싶다고 신청을 했는데 인사과에서 안된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그런가보다 하고 복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주 후에 복직한 다른 친구부터는 OLED 사업부로 배정을 받았다고 하여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부서배치를 최종받고 보니 기존에 일하던 곳은 외주화 되어 갈 수 없었고, 사업장 초창기 라인으로 가서 일을 했습니다. 크린룸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드리고 OJT를 받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일생 중 가장 큰 사고를 친건 아닌가 싶습니다. OJT를 제대로 받지 않고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설비를 조작하다가 사고를 쳤습니다. 설비 job change를 하다가 제대로 하지 않아서 설비끼리 협착되는 바람에 약 8시간 정도 생산 stop을 했습니다. 이 당시가 제 스스로 느낄 때 가장 자책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전역했을 때 몸무게 86킬로였는데 저 사고 이후로 스트레스때문에 15킬로가 빠졌습니다. 잠을 잘려고 눈만 감으면 설비 잘못 조작해서 설비가 고장나는 상상이 계속 되고, 계속 꿈을 꾸다보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도 제대로 못 했던 것 같습니다. 스크린 마스크라는 것도 여러번 터트리고(상당히 비싼 것입니다.) 정말 일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한 번씩 몸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꿈을 꾸는데 그 때마다 자괴감이 듭니다. 회사를 다시 입사해서 다시 그 포지션으로 돌아간 저를 보면서 너무 속상했습니다.

 글이 상당히 길었는데 이 때까지 저의 흑역사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화장실에 놓여져 있던 책을 읽으면서 부터였습니다. 그 당시에 감명 받았던 책은 로버트 기요사키가 쓴 “부자아빠와 가난한 아빠”라는 책입니다.. 저는 지금껏 돈은 땀 흘리며 일을 해서 벌어야 하며 그렇게 번 돈으로 빚을 내서 집을 사서 열심히 갚아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저의 그런 인생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 책을 보고나서 ‘공부가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를 배워야겠으며, 주식도 배우고, 그 이후에는 ‘부동산 분야를 배우고 싶다’라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 책은 미치 앨봄이 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좀 더 인생을 진지하고 뜻 깊게 살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내 삶의 쉬는 날의 의미는 단지 쉬는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지나간 날들은 그냥 지나간 하루의 나날이었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모리라는 교수님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자기가 죽어 가는 와중에 자기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삶에 대한 생각에 대해 자신의 제자인 미치 앨봄에게 이야기 해 주는 그런 책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드리는 그런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죽으면 어떨까? 어떤 느낌일지? 아무 것도 없다는 느낌이 드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의미함이 주는 슬픔이 저에게는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 뜻 깊게 살아보자’ 라고. 내가 눈 감을 때에 무언가 보람찬 무언가... 즉 어떤 것이라도 이루어 놓은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날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든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고, 오늘 살았던 삶이 기대에는 조금 미치지 못 할지라도 조금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그 목표 언저리 어딘가에는 도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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